남광 자망 닻 전문 / 이설야
화수부두로 47번가에서 길이 끊겼다
공장 안에 바다가 갇혔다
커다란 철문 안에 선박이 줄에 묶인 채 녹슬어 간다
갈매기들이 공장 굴뚝 연기를 지우다가
폐수로 흐르는 검은 바다에 내려앉아 물고기를 찾고 있다
찾아도 찾을 수가 없는 것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세상에 대고 문을 두드릴 때가 있다
문 닫은 상점 앞에
아귀를 들고 누군가 서 있다
백발 노인이 도마 위에 내려놓고 아귀의 배를 가르자
내장과 함께 황새기, 임연수, 새우깡봉지가 쏟아져 나왔다
물고기들이 헤엄쳐 지나온 길이
바다의 수심을 내리치는 도마 위에서 끝이 났다
'남광 자망 닻 전문'간판 아래
오후가 오후를 지우며 느리게 걸어가고 있다
붉은 닻들 서로 엉켜 붙어 더 이상 가지 못한다
소라 껍데기를 매단 그물들이 바다를 찾고 있다
물고기의 눈이 서서히 닫히고 있는 화수부두
길은 어디까지가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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