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

세한도 / 박현수

이문형 2014. 3. 6. 00:27

                세한도  /  박현수

 

 

1

어제는 나보다 더 보폭이 넓은 영혼을

따라다니다 꿈을 깼다

영원히 좁혀지지 않는 그 거리를

나는 눈물로 따라갔지만

어느새 홀로 빈들에 서고 말았다

어혈(瘀血)의 생각이 저리도

맑게 틔어오던 새벽에

헝크러진 삶을 쓸어 올리며

첫닭처럼 잠을 깼다

 

누군 핏속에서

푸르른 혈죽(血竹)을 피웠다는데

나는

내 핏속에서 무엇을 피워낼 수 있을까

 

2

바람이 분다

가난할수록 더 흔들리는 집들

어디로 흐르는 강이길래

뼛속을 타며

삼백 예순의 마디마디를 이렇듯 져미는가

내게 어디

학적(鶴笛)으로 쓸 반듯한

뼈 하나라도 있던가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래더미 같은 나는

스무해 얕은 물가에서

빛 좋은 웃음 한 줌 건져내지 못하고

그 어디

빈 하늘만 서성대고 다니다

어느새

고적한 세한도의 구도 위에 서다

 

이제

내게 남은 일이란

시누대처럼

야위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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