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민박 / 이상국
무청을 엮던 주인이 굳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해서
시 만드는 사람이라고 일러주었으나
노는 가을 며칠을 거저 내주지는 않았다
세상의 시가 그러하듯 오늘도
나 같은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주인 내외는 근사하게 차려입고
읍내로 잔치 보러가도 나는
지게처럼 담벼락에 기대어
지나가는 가을을 바라보았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건 없었으나
별로 해준 게 없었다
돌아가면 이 길로 지구를 붙잡아매던가
아이를 하나 더 낳았으면 좋겠다
스승은 늘 분노하라 했으나 때로는
혼자서도 놀기 좋은 날이 있어
오늘은 종일 나를 위로하며 지냈다
이윽고 어디선가 시커면 저녁이 와서
그 쪽으로 물오리들 폭탄처럼 날아간 뒤
나는 라면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땀을 흘리며 먹었다
-제19회 현대불교문학상 시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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