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

사흘 민박 / 이상국

이문형 2014. 3. 25. 00:39

           사흘 민박  /  이상국

 

 

무청을 엮던 주인이 굳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해서

시 만드는 사람이라고 일러주었으나

노는 가을 며칠을 거저 내주지는 않았다

세상의 시가 그러하듯 오늘도

나 같은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주인 내외는 근사하게 차려입고

읍내로 잔치 보러가도 나는

지게처럼 담벼락에 기대어

지나가는 가을을 바라보았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건 없었으나

별로 해준 게 없었다

돌아가면 이 길로 지구를 붙잡아매던가

아이를 하나 더 낳았으면 좋겠다

스승은 늘 분노하라 했으나 때로는

혼자서도 놀기 좋은 날이 있어

오늘은 종일 나를 위로하며 지냈다

이윽고 어디선가 시커면 저녁이 와서

그 쪽으로 물오리들 폭탄처럼 날아간 뒤

나는 라면에 고춧가루를 듬뿍 넣고

땀을 흘리며 먹었다

 

 -제19회 현대불교문학상 시 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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