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 243-5>
'난마'란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말한다. 이런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려다가는 부지하세월이다. 이런 때는 칼로 잘라야 한다. '쾌도난마'란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 요컨데 먼 길을 돌아 조나라 한단을 구원하기보다는 위나라 수도 대량을 공격함으로써 조나라를 구한다는 전술이었다. 위나라 정예병은 전투에 투입되었고 수도 대량에는 노약자들만 남아 있어 대량을 공격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하며, 또 수도가 공격당하면 틀림없이 군대를 돌려 구원하러 올 것이라는 계산이 섰던 것이다.
손빈의 예상은 적중했다. (P 290)
계명우기를 보면 네 유형의 친구가 잘 정리되어 있는데 조금은 섬뜩하다. 어떤 유형이 진정한 친구이며 우리 곁에는 과연 어떤 유형의 친구가 많을까.
첫째. 서로 잘못을 바로잡아주고 큰 의리를 위해 노력하는 친구 사이다. 이를 외우라고 한다. 존경하는 친구라는 뜻이다.
둘째. 힘들 때 서로 돕고 늘 함께할 수 있는 친구다. 친밀한 밀우다.
셋째. 좋은 일과 노는 데만 잘 어울리는 친구다. 일우라고 한다. 놀다라는 뜻의 닐자를 쓴다.
넷째. 이익만 보고, 근심거리가 있으면 서로 미루고, 나쁜 일이 있으면 서로 떠넘기는 사이다. 도적놈을 뜻하는 적자를 써서 적우라고 한다. (P 294)
하나라를 건국한 우임금은 황하의 물길을 다스리는 치수에 성공해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 곤은 순임금의 명령을 받들어 9년동안 치수에 매달렸지만 실패했다. 물길이 터지는 곳마다 제방을 막으려 했으니 하나가 터지면 다른 곳이 따라 서 터지는 바람에 성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 우는 물길을 터주는 방법을 썼다. 황하의 물이 넘치는 곳이 있으면 다른 곳으로 물길을 텄다. 많은 물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여러 갈래로 분산시킴으로써 마침내 치수 사업에 성공했다. (P 319)
이리는 춘추 시대 진문공 때 법관으로 법을 잘못 적용해 범인이 아닌 자를 죽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곧 잘못이 드러났다. 이리는 문공에게 자신의 판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죽었다며 자신의 처벌을 청했다. 그것도 사형을 청했다. 문공은 법조문을 잘못 적용한 것은 틀림없지만 고의가 아니라 실수였기 때문에 너그러이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이리는 완강했다.
"신은 담당 부서의 장으로서 부하에게 지휘를 양보한 적이 없고 많은 녹봉을 받으면서 부하 직원에게 이익을 나눠준 적도 없습니다. 판결을 잘못해서 사람을 죽였는데 그 죄를 하급 관리에게 떠넘길 수 없습니다. 책임은 제가 져야 합니다. 사형에 처해주십시오."
진문공은 그런 논리라면 이리를 임명한 자신에게도 죄가 있다며 이리를 용서했다. 하지만 이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관에게는 법률이 있으며 법에 따라 공평하게 법을 처리하라고 자신을 법관의 최고 자리에 임명했으니 문공의 명령에 따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칼에 엎드려 자결했다. (P 332)
신분과 귀천을 뛰어넘어 똑똑하고 능력 있는 자를 인재로 선발하여 활용한 조간이야말로 열린 마음을 가진 CEO였다. 학력, 연령, 지역, 신분을 파괴한 인재관리 시스템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당시에 '벼슬살이를 하느니 차라리 조간의 노예가 되겠다.'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였다. 엄격한 신분제로 인한 관료가 되는 길만이 입신출세의 기준이자 표준이던 시절이었다. (P 371)
사마천은 "1년을 살려거든 곡식을 심고, 10년을 살려거든 나무를 심고, 100년을 살려거든 덕행을 베풀라"고 외치고 있다. (P 380)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는 "옥을 식별하려면 만 3일을 구워봐야 안다"고 했다. "인재를 알아보려면 7년이 걸린다."고도 했다. 당시에는 맞는 이야기였는지 모르겠지만 정보화 시대인 지금은 7년은커녕 7일, 아니 7시간 만에라도 알아볼 수가 있지 않을까. 아니다. 그가 진짜 인재인지 여부는 어쩌면 7년으로도 모자랄지 모른다. 인간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P 394)
흔히 권력하면 움켜쥐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권력을 '잡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권력의 '권'자는 '저울추'다. 저울추는 어떤 사물의 무게를 정확하게 달기 위해 균형을 맞추는 데 필요한 보조 도구일 뿐이다. 권력을 영어로 표현하면 '힘의 균형 Balance of Power'이다. 요켠데 권력이란 힘을 나누고 덜어내어 균형을 잡는 행위다. 힘을 분산시키고 나누는 것이 권력이지 움켜쥐고 장악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에서는 권력의 이런 본질을 잘 이해하고 힘을 나눌 줄 알았던 리더만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미리 지적해둔다. (P 404)
- 김영수. 역사서.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의 인간 탐구).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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