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봉 염소 / 김해자
님하, 물을 건너소서
님 떠나간 항구에서 목 놓아 울 바엔
아흐 님하, 차라리 떠나는 뱃고동이 되소서
그리움도 제풀에 지쳐서 물거품이 되어버릴 즈음
검은 섬에 당도하거든
어디서 들리는 해당화 향기도 좋아라
절벽에 핀 아스라한 꽃은 지나가는 수로부인에게 맡기고
님하, 천 년 전쯤 노옹이 비끄러매다 놓친 염소나 되소서
향기로운 꽃쯤이야 수평선에 던져놓고
발치에 꽃이 피든 말든 배가 떠나든 말든
도로봉 절벽 위에 네 다리를 붙이고
눈이 짓물러터지도록 수평선만 바라보다 오소서
아무리 절벽을 치고 올라와도 이내 수평으로 돌아가고 마는
짙푸른 바다의 문으로 들어가
아흐 님아, 그 눈이 되어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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