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

샌프란시스코 / 정용기

이문형 2012. 12. 28. 02:59

           샌프란시스코  /  정용기

 

          - 당신이 만약 샌프란시스코에 가신다면

            머리에 꽃을 꽂으십시오*

 

 

그때 나는 제대 말년, 육군 보병 병장

꽃들과는 내연의 관계였네

내 안에서 사태나던 무수한 꽃들

그래도 주체할 수 없던 개나리꽃은 철모에 꽂고

행군길에 나섰네

알맹이 빼어버린 방독면 주머니에

소형 라디오 몰래 감추고서는

얼굴도 모르는 외국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샌프란시스코에 가고 싶었네

어디쯤 있는지 몰라도 노란 꽃의 나라에 닿고 싶었네

그 봄 행군길은 눈물겨웠네

 

속절없이 스쳐가는 세월의 물살

우두망찰 바라만 보다가 어느새 가을

굳은살 오른 발바닥으로는 짚이지 않던 길들이

노래 한 자락 제대로 들여놓을 수 없는 마음속에

숨어 있기라도 할까

빈배만 남아 흔들리는 나루터에서

한 줄로 늘어선 나무들 곁에 앉는다

우주와 내통하는 저 들뜬 열망들을

물 속에 부려 놓고 다스리는 나무들

폭설이 내려서 모든 길이 사라져 버리는 날은

안테나를 뻗어 먼 하늘로 편지를 쓰겠지

흘러가는 강물 내 안으로 끌어들여

나무들의 열망을 품어 보리라

속살 깊이 오래 감춰둔 햇살과 바람에 몸 섞으면

내 안에서 나무들 온통 꽃무더기로 일어서겠지

그래그래 샌프란시스코는 잊을 수 없지

내 마음 속 사막의 오아시스지

늦가을 다시 듣고 싶은 샌프란시스코

 

  * Scott Mckenzie가 부른 ‘San Fransisco'의 시작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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