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천장어 / 이지호
풍천(風川)이라는 말에는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다는 슬픔이 담겨 있다
바람을 온몸에 바르고 짠물에 드는 뱀장어
등지느러미 하나로 버텨야 하는 온몸이
밤처럼 검고 미끄럽다
허약한 산란
몸을 뒤틀며 나아가는 것들의 길은 구부러진 후미를 남긴다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 것들은 밤과 친하고
몸 안에 부른 배를 가진 여자가 물 밖에서 살았다 밝혀지지 않은
산란처가 있듯 배, 안의 새끼들은 보이지 않게 태어나야 한다 민물
의 밋밋함보다 짠맛을 먼저 알려주어야 하는 아이 하나를 데리고
사라진 후미에
미끄러운 소문만 무성하다
발이 없어 방향도 남아있지 않은 봄
제 짝이 없는 계절들만 뒤 처 져 행락으로 소란하다
둘이 하나를 만들지 못하고
하나가 하나를 만드는 일이 봄날사(史)에 다분하다
벚꽃이 서로 손을 잡고 풍천에 든다
여자가 남겨놓고 간 체불의 월급이 불룩하다
바람이 물을 섞고 있는 곳
한 계절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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