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

갈필渴筆을 잡다 / 박남희

이문형 2012. 4. 26. 01:48

           갈필渴筆을 잡다  /  박남희

 

  

이것은 나의 갈필로

세상의 모든 여백 위에 쓰고 싶은 이야기이다   

 

나를 계절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나를 버리겠다

나의 바람을 버리고 나의 이파리를 버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던 모든 눈들을 버리겠다 

나는 때때로 버림받을수록 단단해진다

나를 상처라고 말한다면

그 상처 속에 숨어있던 것들을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로 풀어놓아

이야기 속의 모든 목소리가 더 이상

상처를 말하지 않을 때까지

나를 버리고 버리고 버리겠다 

 

나를 버리고 나면

그 맨 밑바닥에서 말없이 고여오는 것을

더 이상 눈물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그동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살아온 내 삶과 사랑에 대해

내 안을 드나들던 모든 바람과 꽃들에 대해

묵을 버리고 허공을 버리듯 

 

더 이상 가엾지 않은 나를

무심코, 우연히 버리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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