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2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3)

이문형 2012. 4. 26. 01:39

<봉지털기 238-3>

국가 간의 생활수준 격차를 간단히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중 1인당 소득, 특히 구매력 평가지수로 표시한 1인당 소득이 그나마 가장 신뢰할 만한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득으로 얼마나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살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여가 시간의 질과 양, 직업의 안정성, 범죄의 공포로부터 해방, 의료 혜택, 사회 복지 등 ‘질 좋은 삶’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을 간과하기 쉽다. 개인마다, 그리고 나라마다 이런 요소들 중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런 것들과 소득 수준 사이의 균형을 어떤 식으로 맞추는 것이 좋을 지는 각자 정하기 나름이지만 모두가 진정으로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소득 이외의 요소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P 153)

 

전자 업계의 거인으로 이름이 알려진 LG는 1960년대에 섬유 산업에 진출하고 싶었지만 정부로부터 이를 저지당하고 대신 전선 산업에 뛰어들어야 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전선 회사가 바로 LG그룹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LG전자의 전신이다. (최신 초콜릿폰에 눈독을 들여 본 사람이라면 LG전자라는 이름에 익숙할 것이다.) 1970년대에 한국 정부는 현대그룹의 전설적인 창업주 정주영 회장에게 조선업을 시작하라는 압력을 넣었다.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기로 유명한 정주영 회장마저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당시 독재자이자 한국의 경제 기적을 주도한 박정희 장군이 직접 현대그룹을 파산시키겠다고 협박하자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렇게 시작된 현대조선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큰 조선 회사 중의 하나이다. (P 175)

 

뉴욕의 브리티시 항공 광고판에서 본 콩코드 광고 문안은 아직까지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큼 인상적이었다. 광고는 사람들에게 콩코드를 타고 ‘떠나기 전에 도착하라’고 설득하고 있었다. (콩코드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데에는 3시간이 걸리는데 뉴욕과 런던의 시차가 5시간이므로 런던에 도착하면 자기가 떠나기 전에 도착하는 셈이다.) 그러나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하는 데 들어간 돈과, 브리티시 항공과 에어 프랑스가 콩코드기를 구입할 때 들어간 정부 보조금 등을 고려하면, 이 프로젝트는 대대적인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P 177)

 

단순히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부자들에게 주어지는 더 많은 부가 사회 전체의 혜택으로 파급되게 하려면 국가는 각종 정책 수단(예를 들어 부자와 기업의 감세를 허용하는 대신 투자를 조건으로 제시)을 통해 부자들로 하여금 더 많이 투자하도록 해서 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도록 하며, 복지 국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옥 해야 한다. (P 197)

 

시장은 비효율적인 관행을 저절로 사라지게 만드는 힘이 있지만, 이는 아무도 시장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혹 오랜 세월에 걸쳐 그런 관행이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일방적인 보수 체계가 있는 동안은 경제 전반에 큰 손실을 끼친다. 노동자들은 계속되는 임금 하락 위협, 간단해진 해고 절차와 정규직을 대체하는 임시직의 증가, 그리고 지속적인 다운사이징 등으로 압박을 받는 반면에 경영자들은 이렇게 해서 창출한 추가 이윤을 주주들에게 분배해서 그들이 경영진의 과도한 보수를 문제 삼지 않도록 한다. (P 208)

 

- 장하준 지음(김희정 · 안세민 옮김). 경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