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2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4)

이문형 2012. 4. 30. 01:32

<봉지털기 238-4>

다른 무엇보다 에디슨이나 빌 게이츠처럼 특별한 인물들도 수없이 많은 제도적, 조직적 지원을 받지 않았으면 오늘날과 같은 업적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이 지식을 습득하고, 또 자신이 생각한 것을 실험해 볼 수 있도록 해 준 과학 인프라, 크고 복잡한 조직을 갖춘 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한 회사법 및 기타 상거래 관련 법률, 이들이 설립한 회사에서 고용한 엔지니어, 경영진, 노동자 등을 양산한 교육시스템, 회사를 확장하는 데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던 금융 시스템, 새로 개발한 기술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특허법과 저작권법 등이 모두 그 예이다. (P 220)

 

한 나라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노력이나 재능보다 공동체 차원에서 효율적인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웅적인 기업가들이 등장하는 신화를 거부하고 집단 차원의 공동체적 기업가 정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돕지 않으면 가난한 나라들이 빈곤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P 222)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학 진학률 10~15%로 세계 최고의 국민 생산성을 기록한 스위스의 사례를 고려할 때 그보다 더 높은 대학 진학률은 사실 불필요하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설령 지식 경제의 부상으로 기술 요건이 많이 올라 스위스의 현재 대학 진학률 40%대를 하한선으로 친다 하더라도(나는 이 하한선 수준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다.) 미국, 한국, 핀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대학 교육의 절반 정도는 기본적으로 제로섬 게임인 ‘분류’ 과정을 위해 낭비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 나라들의 고등 교육 현실은 영화관에서 화면을 더 잘 보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장면을 생각나게 한다. 한 사람이 서기 시작하면 그 뒷사람도 따라서 서게 되고, 그러다가 일정 비율 이상의 사람들이 서면 결국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말이다. 영화관에 있는 사람들은 이제 화면을 더 잘 볼 수도 없으면서 앉아서 보지도 못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P 249)

 

사업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업가들은 결국 돈을 충분히 벌 수 있다는 계산이 서면 299개의 허가를 받는 것도 (들킬 우려만 없으면 뇌물을 써서 일을 간단하게 만들기도 하면서)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 수수께끼에 대한 첫 번째 설명이다. 따라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좋은 사업 기회를 계속 찾아낼 수 있는 나라에서라면 299개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고충을 감수하고서라도 너도나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반대로 별로 돈을 벌 확률이 없는 곳에서는 29개를 허가받는 것도 너무 성가셔 보일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기업 활동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유는 많은 경우 규제가 실제로 기업 활동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P 260)

 

기계, 공장 건물, 도로 같은 ‘생산수단’의 집단 소유에 기반을 둔 계급 없는 사회라는 공산주의적 비전을 추구한 소련과 그 동맹국들은 완전 고용과 높은 수준의 평등을 목표로 내걸었다. 생산수단을 누구도 소유할 수 없으므로 (작은 식당이나 미용실처럼 사소한 예외는 있으나) 모든 기업은 실질적으로 전문 경영인들이 운영했다. 그 때문에 헨리 포드나 빌 게이츠 같은 비전을 지닌 기업가들이 나오기 힘들었다. 높은 수준의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는 정치적 목표 때문에 소련의 경영자들은 아무리 경영 성과가 좋아도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없었다. 당시 소련에 소비자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상품들을 생산할 만한 첨단 기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영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기술로 좋은 상품을 생산해서 경영 성과를 올리려 발버둥칠 만한 인센티브가 부족했다. 더욱이 무슨 일이 있어도 완전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책으로 말미암아 경영자들은 노동 규율을 바로잡기 위한 최후의 방법, 즉 해고 위협이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일을 대충 하고 결근도 잦았다. 후에 소련 경제 개혁에 나선 고르바초프는 노동 규율 문제를 자주 언급했다. (P 265)

 

 - 장하준 지음(김희정 · 안세민 옮김). 경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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