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2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2)

이문형 2012. 4. 12. 02:49

<봉지털기 238-2>

유명한 투자가 워런 버핏은 1995년 한 TV 인터뷰에서 이 점을 훌륭하게 정리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의 많은 부분이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벌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나를 방글라데시나 페루 같은 곳에 갑자기 옮겨 놓는다면 맞지 않는 토양에서 내 재능이 얼마나 꽃 피울지 의문입니다. 30년 후까지도 고전을 면치 못할 거예요. 지금 활동하는 시장은 내가 하는 일에 아주 후한 보상을 내리는 환경입니다. 사실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보상이지요.” (P 56)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볼 때 적당히 낮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 인플레이션이 낮아져 경제가 안정되면 투자를 불러일으켜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과는 정반대로, 인플레이션을 아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려는 시도는 투자와 성장을 위축시켰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이 낮아졌어도 우리는 대부분 진정한 경제적 안정을 맛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을 주요 목표로 하는 자유 시장 정책 패키지의 근간을 이루는 자본과 노동 시장의 자유화는 금융 불안과 고용 불안정을 초래해서 불안정한 세상을 만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이 정책이 약속했던 이른바 ‘성장 촉진’마저 실현하지 못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강박관념은 이제 잊어버리자. 인플레이션은 장기적 안정, 경제 성장, 그리고 인류의 행복을 희생해서 금융 자산 보유자들에게나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이 대중을 겁주기 위해 사용해 온 ‘무서운 망태 할아범’ 같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P 93)

 

날마다 수천만 미국인들이 택시를 타고, 샌드위치를 사면서 해밀턴과 링컨으로 지불을 하고, 거스름돈으로 워싱턴을 받는다. 존경해 마지않는 이 정치인들이 날이면 날마다 좌파, 우파에 관계없이 미국의 모든 신문 방송에서 공격해 대는 그 못된 보호 무역주의자들이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는 채,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기사를 읽으며 혀를 찰 뉴욕의 은행가들과 시카고 대학의 교수들도 그 기사를 실은 월스트리트 저널을 살 때 쓴 앤드루 잭슨이 차베스보다 훨씬 더 외국인 차별을 심하게 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P 102)

 

스위스와 싱가포르의 실제 모습은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 실제로 이들은 제조업 성공 신화를 일군 나라들이다. 사람들은 흔히 스위스가 제3세계 독재자들이 은행에 예치해 놓은 비자금이나 관리해 주면서, 혹은 일본이나 미국 관광객들에게 소 목에 매다는 방울과 뻐꾸기시계 따위나 팔아먹고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업 경제를 이룩한 나라 중 하나이다. 우리가 스위스 산 제품을 흔히 볼 수 없는 것은 스위스가 인구 700만 명의 작은 나라여서 제조업 제품 생산량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은 데다 그마저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소비재가 아니라 기계류나 화학제품 같은 생산재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위스는 1인당 제조업 제품 생산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이다. (연도와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일본과 스위스가 1, 2위를 다툰다.) 싱가포르 역시 세계에서 제조업이 강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이다. 지금까지 나온 일본, 스위스, 싱가포르에 핀란드와 스웨덴을 더하면 제조업 부문의 세계 최강 5개국이 된다. (P 140)

 

개발도상국이 산업화 단계를 건너뛴 다음 서비스 산업으로 번영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서비스는 생산성이 느리게 성장한다. 그리고 생산성 증가 속도가 빠르다는 첨단 지식 기반 서비스 산업들은 강력한 제조업 없이 발전할 수 없다. 더욱이 서비스는 국제 교역이 없다. 그래서 개발도상국이 서비스 산업에 특화하는 경우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에 직면할 수 있고, 이렇게 되면 경제를 고도화시킬 능력 또한 떨어지게 된다. 이렇듯 탈산업 사회라는 환상은 선진국에도 좋지 않지만 특히 개발도상국에는 대단히 해롭다. (P 141)

 

 - 장하준 지음(김희정 · 안세민 옮김). 경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