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 이송희
설산을 오르다 길을 잃었습니다
지워진 길들 위로 칼바람이 지나가고
잡목들 부러진 관절이 데굴데굴 구릅니다
내 안에 굵은 눈발 휘몰아쳐 오는 밤
어디에도 길은 없고 벼랑만 있습니다
어둠을 껴입은 하늘 눈앞이 캄캄합니다
그 흔한 안부도 없이 멀어진 달무리
결빙의 순간들이 쟁쟁한 눈빛을 담고
세상 밖 밀려난 생각이 언 문장을 읽습니다
능선을 돌고 돌아 만나는 절벽의 길
마음은 눈밭을 굴러 뒤범벅이 됩니다
지독한 악몽의 숲에서 그만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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