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바람 그리기

연꽃에 심지꽂고 / 이문형

이문형 2007. 9. 15. 00:15

     연꽃에 심지꽂고  /  이문형



개흙 속을 속속들이 뒹굴어봐야

뿌리 하나 뻗을 자리 알 수 있다는데

세상 사는 의미도

백팔번뇌를 거쳐봐야 겨우 눈 뜬다는데

사랑도 사랑 나름

이속저속 다 태워봐야

겨우 앞 가름 할 수 있는 등 하나로

내걸릴 수 있다는데


연등으로 세상에 내걸린다는 거

근원으로부터 영혼 하나 쑥 올라와 연꽃 피운

그 꽃술에 심지 꽂아

줄기에서 연엽으로 연근까지 내려가며

하나하나 등불 켜는 일

개흙 속을 뒹굴던 잔뿌리 그 아래로 내려가며

자괴를 모두 파헤치는 일

견뎌온 삶을 처절하게 밝혀

원죄까지 확연히 들추어내는 일


연등으로 세상에 내걸린다는 거

자빈지 안식인지 그리움인지도 모를

작은 떨림이라도 혹, 찾아보는 일

나를 사르고 살러 빛으로

세상 건너는 일

 

「바람 그리기」시편 : 책나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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