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2

난세에 답하다 (2)

이문형 2013. 3. 27. 02:04

<봉지털기 243-2>

제환공의 열린 인사 정책을 잘 설명해주는 고사성어가 ‘정료지광(庭燎之光)’이다. ‘정료’는 ‘뜰에 횃불을 매달아 밝혀놓는다’는 뜻이다. 제나라 국군의 자리에 오른 후 제환공은 인재를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의 집무실, 즉 궁전 뜰에 횃불을 환히 밝혀놓고 24시간 개방했다. 인재라면 언제든지 찾아와라, 그러면 만나주겠다는 의지를 만천하에 천명한 것이다. 덕분에 1년 동안 상당히 많은 인재를 발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자 인재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제나라 군주에 만족하지 않고 천하 맹주가 되고 싶었던 제환공은 늘 인재에 목말라 했다. 그런 그였기에 인재의 발길이 끊어지니 마음이 초조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노인이 찾아와 면담을 요청했다. 제환공은 노인에게 무슨 재주가 있느냐고 물었다. 노인은 구구셈을 할 줄 안다고 대답했다. 제환공은 어이없어 하며 어린아이도 능히 할 수 있는 재주가 무슨 재주냐며 따졌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주군께 과감하게 인재를 등용하시고 1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인재들이 찾아오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내 재주를 가지고 주군께 봉사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주군의 눈높이가 너무 높은 까닭입니다. 이런 마당에 구구셈밖에 모르는 저를 발탁하시면 적어도 저보다 더 나은 인재들이 얼마든지 찾아올 것 아니겠습니까.”

깊이 깨달은 제환공은 그에게 자문역을 맡겼다. (P 82)

 

노공행상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기업을 예로 들자면 큰 이익을 남겼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성과급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문공은 논공행상과 관련하여 네 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이 대목은 오늘날의 정치가들도 충분히 본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

첫째, 仁(인)과 義(의)로 나를 이끌고, 德(덕)과 恩惠(은혜)로 나를 지켜준 사람이라면 일등 공신이다. 둘째, 행동으로 나를 보좌하여 공을 이룬 이는 실무를 한 사람이다. 셋째, 위험을 무릅쓰고 땀을 흘린 자는 행동대원이다. 넷째, 최선을 다했으나 나의 잘못을 보완해주지 못한 이도 공신이다. (P 93)

 

용이 하늘에 오르고자 하니 다섯 마리 뱀이 보필했네. 마침내 용이 승천하니 네 마리의 뱀은 각자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으나 한 마리는 홀로 제 집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네.

그 한 마리가 바로 개자추였다. 결국 노래는 돌고 돌아 진문공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뒤늦게 깨달은 진문공은 개자추를 찾았다. 한편 개자추에게는 노모가 있었다. 젊었을 때 개자추는 어머니와 짚신을 엮어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노모도 개자추에 관한 소문을 듣고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너는 임금을 그렇게 모시고 다녔는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 개자추가 대답했다. “부귀와 영화를 노린 게 아니라 그저 진심으로 주군을 모셨을 뿐입니다. 공신들은 자리 때문에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개자추 모자는 세상을 피해 면산(오늘날 산서성 개휴현 동남부)으로 숨어버렸다. 지금도 면산에 가면 개자추 무덤이 있고 개자추 모자 상이 있다. 경관도 절경이다. 한편 문공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자추를 불렀으나 나오지 않았다. 문공은 그를 나오게 하기 위해 산에다 불을 질렀다. 그러나 끝내 나오지 않았고 어머니와 함께 타 죽었다. 개자추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아들의 지조를 끝까지 지켜주기 위한 어머니의 심정은 또 어떠했을까.

한식은 개자추를 기리기 위한 명절이다. 개자추가 불에 타 죽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그날은 데운 음식이나 뜨거운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게 한식이 뜻하는 바다. (P 96)

 

백제, 신라, 고구려 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오사카, 나라를 중심으로 일본의 고대 문화를 화려하게 꽃피운 게 아스카 문화다. 교토에 가면 고류지란 고찰이 있다. 우리나라 국보 제78호와 제83호인 금동으로 만든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똑같은 일본 국보 제1호가 모셔져 있다. 적송으로 만든 95센티미터 반가사유상이다. 고류지는 이 불상 하나로 1년 내내 재정을 걱정하지 않는다. 고류지는 신라에서 건너온 하타노 가와카쓰가 창건했다고 《일본서기》는 기록하고 있다. 일본 국보 제1호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그가 희사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하타노 가와카쓰를 우리 식대로 읽으면 진하승(秦河勝)이다.

일본 사람들은 이 절과 불상을 소개하면서 한반도의 도래인이 창건했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인지 진하승의 족보를 바꿔버렸다. 돌로 된 안내석에 진하승을 진시황의 후손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진시황은 진(秦)씨가 아니다. 영씨다. 진하승의 원래 영하승이었다면 어느 정도 개연성이라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고 난 뒤에야 안내판에서 그 내용이 지워졌다. 지금도 고류지에 가면 그 지운 흔적을 볼 수 있다. (P 98)

 

‘이게 다 운명이야’ 우리는 운명(運命)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움직일 운(運)’ 자를 쓰는 운명은 움직일 수, 즉 바꿀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디 숙(宿)’ 자(잠을 잔다는 뜻도 있다.)를 쓰는 숙명(宿命)은 바꿀 수가 없다. 운명과 숙명을 혼동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운명을 숙명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 운명을 내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용기가 생긴다. 사마천은 자신의 운명을 인정했고 그로써 용기를 얻어《사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용기다. 진정한 용기는 자신의 운명을 인정하고 그로써 얻은 용기로 세상에 이바지하며 인간으로서의 고귀한 존엄성을 획득하는 데서 생기지 않을까. 《사기》는 그런 존엄한 인간의 모습을 여러 인물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P 105)

 

  - 김영수. 역사서.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의 인간 탐구).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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