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2

난세에 답하다

이문형 2013. 3. 12. 01:08

<봉지털기 243>

사기는 그 분량부터 방대하다. 권수만 130권이고 글자 수는 52만 6,500자에 이른다. 130권을 다시 체제로 분류하면 본기, 표, 서, 세가, 열전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런 역사서 체제를 '기전체'라고 부른다.

'본기'는 황제에 관한 기록이다. 그러나 사기에는 <항우 본기>가 <한고조 본기>에 앞서 서술되었다. 황제는 아니지만 한때 중원의 패주였던 항우(기원전 232년~기원전 202년)를 유방보다 먼저 위치시킨 점이 흥미롭다.

'표'는 연표다. 어느 해에 어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엑셀 프로그램처럼 세로에는 연대, 가로에는 인명을 배열하고 연도별 관직 임명과 파면, 좌천 등을 기록했다. 사마천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서'는 국가 제도와 문물에 관한 전문적인 논문이라 할 수 있다.

'세가'는 황제를 보필했던 인물, 즉 제후에 관한 기록이다. 하지만 제후가 아니었던 공자와 진승(진섭)을 <공자 세가> <진섭 세가>로 다룬 것은 그들에 대한 사마천의 평가가 남달랐음을 보여준다. 특히 평민인 진승을 은나라 시조 탕왕과 주나라 시조 무왕에 비유했다. 한편 한나라의 개국공신인 한신, 경포, 팽월 등은 반란을 일으켰다는 점을 들어 '세가'에 두지 않고 '열전'으로 내려보냈다. 사기의 백미라는 열전은 유명 인물만을 다루지 않았다. 열전은 말 그대로 '모든 사람'에 관한 기록이다. (P 9)

 

사마천은 "보통 사람은 자기보다 열 배의 부자에 대해서는 욕을 하고, 백 배가 되면 무서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 사람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된다"고 꼬집었다. (P 12)

 

사마천은 49세에 궁형을 받았지만 부인 양씨와의 사이에서 이미 아들,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전설에 의하면 사마천은 그의 유골을 거두어 안장한 뒤 영춘화 (봄맞이꽃)를 심어준 유천랑이라는 여성과도 관계가 있었고, 당나라 때의 저명한 문인이자 대서예가 인 저수량이 남긴 묘지명(일명 몽비)에 나오는 수청오라는 첩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P 50)

 

오월동주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하면 범려를 꼽을 수 있다. 사냥할 때 '토끼를 잡고 나면 쫓던 사냥개를 잡아먹는다'는 고사성어 '토사구팽'.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 말은 월나라 제상이었던 범려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맹주가 된 구천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가족을 데리고 월나라를 떠나면서 친구인 문종에게 남긴 말이다. 한신이 유방에게 죽음을 당하며 이 말을 인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기에는 범려의 경우를 비롯해 토사구팽이 세 군데나 나온다. 토사구팽이라는 말이 당시의 유행어였던 셈이다.

범려의 매력은 최고의 절정기에 스스로 물러난, 즉 '박수 칠 때 떠날 줄 아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 오나라를 멸망시킨 구천은 범려에게 강산을 반반씩 나눠 가지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범려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짐을 챙겨 떠나버렸다. "떠나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 구절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반면 제나라로 떠난 범려가 편지를 보내 떠날 것을 권유했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 문종은 범려의 권유에 뜨끔했지만 결국 망설이다가 구천이 내린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했다. 범려가 남긴 말 가운데 '어려울 때 생사를 걸고 같이할 수 있는 사람과 잘될 때 같이할 수 사람을 구별해야 된다'는 취지의 말도 새겨볼 만 하다. 결국 범려는 오너였던 구천의 본색을 파악했지만 문종은 그러지 못했다. 문종은 범려를 발탁한 뛰어난 안목을 지닌 인물이었지만 떠나야 할 때를 놓치는 바람에 토사구팽당했다. 유방의 건국 공신 가운데 장량이 범려라면 한신은 문종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P 67)

 

 - 김영수. 역사서.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의 인간 탐구).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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