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2

통섭 (7)

이문형 2013. 1. 15. 01:31

<봉지털기 241-7>

예술은 인간의 조건을 감정과 느낌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즉 예술은 질서와 무질서 양자를 함께 환기시킴으로써 모든 감정을 움직인다. 그렇다면 예술을 창조하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사실에 기반한 차가운 논리인가, 아니면 밀턴의 믿음처럼 시인의 사색을 이끄는 신의 인도인가? 모두 아니다. 게다가 실락원의 저자에게서 발견되는 천재성을 점화시키는 그 어떤 독특한 섬광의 증거도 없다. 예를 들어 음악적 재능이 특출한 사람이 상상을 하고 있을 때 그들의 뇌를 관찰해 본들 그들에게서 어떤 특이한 신경생물학적 특징들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덜 재능 있는 보통사람들보다는 동일한 뇌 부위들이 보다 폭넓게 활용되고 있었다. 역사도 이러한 이른바 증대 가설을 지지한다. (P 368)

 

20세기 초의 학자들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저자가 살았던 시대의 역사를 강조했다. 하지만 1950년대에 이르러 신비평은 저자의 개인사에 대해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텍스트의 완전한 의미를 끌어내는 것을 고집했다. 그들은 "예술 작품은 한 줄 한 줄마다 자신의 정당성을 지녀야 한다."라는 조셉 콘래드의 유명한 언명에 동의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신비평은 정반대의 접근법을 주장하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의해 갑작스럽게 무너지고 만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텍스트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을 찾고 저자의 사회적 구성물로 텍스트의 전모를 설명하라고 요구했다. 그들의 입장은 시인이자 비평가인 프레더릭 터너의 다음과 같은 지적으로 요약된다. "예술가와 시인은 환경 위기의 시대에도 자연의 구속력을 간과하고 과학을 무시하며 예술의 형식과 규율, 즉 그들 자신의 문화가 지닌 무속적 전통을 포기해야만 한다. 또한 보편적 인간 본성이라는 이념을 단념하고 숨막힐 듯한 구속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며 희망을 비롯하여 우리를 고양시키는 감정들에 격노해야 한다." 하지만 터너는 이런 문학사조에 대한 전복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말했다. "호메로스, 단테, 레오나르드 다빈치, 셰익스피어, 베토벤, 괴테의 전통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이 전통은 포스트모던 콘크리트의 균열 한가운데에서 자라나고 있다."

에드먼드 윌슨은 이와 같은 예술의 영원한 진동의 진폭이 줄어들기를 희망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생각했던 근대 정신의 기이한 고민거리이다. (P 373)

 

인간이라는 종이 가지는 가장 특징적인 속성들로는 고도의 지성, 언어, 문화 그리고 장기적인 사회 계약에 대한 의존성 등이 있다. 이런 속성 집합들로 인해 초기의 호모 사피엔스는 경쟁하던 다른 모든 동물 종들보다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속성을 얻게 되면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예를 들어 자아 인식의 충격, 개인적 존재의 유한성, 그리고 환경의 혼돈 등이 그것이다.

인류가 낙원에서 추방된 것은 단지 신에 대한 불복종 때문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심리적 추방감으로 인해 고생하는 유일한 종이다. (P 388)

 

예술은 지성이 야기한 혼돈에 질서를 부과할 필요성 때문에 탄생했다. (P 389)

 

토머스 제퍼슨은 존 로크를 좇아서 자연법으로부터 자연권 학설을 이끌어 낼 즈음 그 기원이 신적인 것이냐 세속적인 것이냐에 대한 관심보다는 초월론적 명제들이 가진 힘에 더 관심이 많았다. 독립선언문에서 그는 하나의 초월론적 문장 안에 세속적 가정과 종교적 가정을 함께 섞어서 모든 가능성들을 교묘하게 다 포함시켰다. "우리는 모든 인간들이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이 권리들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가 있음을 자명한 진리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미국의 민간 종교의 주요한 전제이자 에이브러햄 링컨과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휘둘렀던 정의의 검이었으며, 여전히 미합중국의 다양한 국민들을 한데 결속하는 중심 윤리로서 살아남아 있다. (P 413)

 

진정한 인격은 종교보다 더 깊은 원천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한 사회의 도덕적 원리들을 내면화한 것으로서 개인적으로 선택되고 고독과 역경의 시련에 충분히 견딜 만큼 강건한 신조들에 의해 확대된 것이다. 이런 원리들을 우리는 통합성이라고 부른다. 즉 문자 그대로 통합된 자아를 말한다. 이 자아 속에서 개인의 결단들은 선하고 참되게 느껴진다. 인격은 덕의 지속적 원천이기도 하다. 그것은 홀로 우뚝서서 다르 이들의 존경심을 자극한다. 그것은 권위 앞에서 비굴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종교적 신앙과 종종 모순되지 않고 또 그것에 의해 더 강화된다 해도 종교적 경건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P 426)

 

   - 에드워드 윌슨(최재천, 장대익 옮김). 학문. 통섭. (주)사이억스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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