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 241-4>
과학적 발견을 해 내는 데에는 고정된 방식이 없다. 그 주제와 관련된 모든 것을 동원해라. 물론 다른 이들도 재현해 볼 수 있는 절차들을 찾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상이한 양식과 스타일의 실험, 예측된 원인과 결과의 상관관계, 무효 가설들을 기각하기 위한 통계 분석, 논리적 논증, 세부 사항에 대한 주의 그리고 다른 사람이 발표한 결과와의 일관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만 어떤 물리적 사건이 다양한 환경에서 계속적으로 관찰된다고 인식될 수 있다. 이 모든 행위는 개별적으로 또는 종함적으로 과학의 진정한 검사필 항목들이며 필수품들이다. 이와 더불어 이런 행위의 결과가 어떤 이들에게 공개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평판이 좋고 심사 체계가 잘 되어 있는 학술지에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과학 풍토 중 다소 부조리해 보이는 것 중 하나는 아무리 훌륭한 발견이더라도 무사히 심사를 통과하고 활자로 인쇄가 되어야만 비로소 의미가 된다는 점이다. (P 122)
과학의 세계에서 신빙성의 증가는 다음 표현들의 변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흥미로운"에서 "그럴듯한"으로, "그럴듯한"에서 "설득력 있는"으로, "설득력 있는"에서 "받아들이 수 밖에 없는"으로, 그러다가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드디어 "명백한"이라는 수식어로 변화된다. (P 122)
카르납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류에게는 "보호자도 적도 없기 때문에" 인류 자신만의 지성과 의지를 통해서 초월적 존재로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과학은 우리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최상의 도구일 뿐이다. 빈 학파가 하버드의 모임이 있기 20년 전에 선언했듯이 "과학적 세계관은 우리 삶에 이바지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삶이 과학적 세계관을 지지할 것이다." (P 127)
한 때 개념 형성의 복잡성 문제에 천착하기도 했던 노벨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에 따르면 "창조적 사고를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뚜렷이 구분짓는 특성은 (1) 창조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모호하게 정의된 문제 진술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들을 점진적으로 구조화하며, (2) 상당한 기간 동안을 그 문제들에 천착하고, (3) 그 문제들과 관련되거나 잠제적으로 관련된 분야들에 관한 배경 지식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요컨데 창조적 사고를 위해서는 박학, 강박 관념 그리고 대담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P 130)
절대주의는 과학과 인문학에 공히 위험한 메두사와 같다. 객관적 진리에 대한 확고한 정의를 섣불리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을 거부하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포기할 준비를 해야 되는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의미 없는 바다에서 표류하는 것보다는 길잡이가 되는 별을 향해 항해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나는 우리가 선배들의 목표에 접근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설령 도달할 수 없다 할지라도 말이다. 객관적 진리는 우리가 따르는 철학적 실용주의 정신과 우리가 공유하는 생각들의 우아함, 아름다움 그리고 능력 속에서 언젠가 꽃을 피울 것이다. (P 132)
18세기 과학자이며 신학자였던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는 꿈을 통해 신의 비밀이 전달된다는 믿음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후에 그의 추종자들은 새에루살렘 교회를 창건했다. 신은 자신의 말씀을 성경에 제한해 두지 않는다. 만일 성스러운 암호가 면밀히 조사된다 해도 발견될 수 없다면(실망스럽게도 그 스웨덴 학자가 알게 되었듯이) 꿈의 세계에 대한 시나리오는 앞으로도 계속될지 모른다. 스베덴보리에 따르면 이미지가 더 명확해지고 더 자주 나타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잠자는 시간을 불규칙하게 만들거나 잠을 아예 자지 않는 방법이 좋다. 적어도 그의 몸에는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틀림없이 한 모금의 독한 아야후아스카를 즐겼을 것이다. (P 146)
- 에드워드 윌슨(최재천, 장대익 옮김). 학문. 통섭. (주)사이억스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