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 239>
즉 생명체란 자기 자신의 구조를 발생시키는 정보를 불변적으로 복제해내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극도로 복잡한 생명체의 구조를 발생시키는 것이므로 이 정보는 대단히 엄청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그 모든 것이 전혀 아무런 손상 없이 완전히 보존된다. 우리는 이러한 속성을 불변적인 복제 혹은 간단히 불면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자 한다.
그런데 생명체와 결정 구조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이 불변적인 복제하는 속성을 공유하게 됨으로써, 그들 사이의 유사성을 더욱더 커지고, 우주의 그 밖의 다른 모든 존재자들에 대해 함께 대립하게 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어떤 화학 물질을 포화 용액 속에서 결정시키려면 결정의 눈(맹아)을 용액 속에 심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어떤 하나의 물질을 서로 다른 두 개의 계系에서 결정시킬 때, 각각의 계에서 나타나게 될 결정의 구조는 그 전에 심어져 있던 맹아의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지만 결정 구조가 나타내는 정보의 양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가장 단순한 생명체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정보의 양과 비교한다면, 엄청나게 적은 것이다. 이 기준은 순전히 양적인 것이지만(이 점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생명체를 결정을 포함한 나머지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구별해 준다. (P 27)
우리는 세 가지 속성을 찾았다. 바로 합목적성, 자율적 형태발생, 복제의 불변성이다. (P 28)
생명체의 모든 기능적인 적응들과 또한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모든 인공물들은 모두들 각각 어떤 유일한 원초적 의도의 부분들로 간주될 수 있는 개별적인 의도들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유일한 원초적인 의도란 종의 보존과 증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는 아주 자의적으로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합목적적인 의도의 본질은 종을 특징짓는 불변성의 내용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데 있다고 말이다. 그러므로 이 본질적인 의도의 성공에 기여하는 모든 구조의 성능, 모든 활동은 ‘합목적적’이라고 불릴 것이다. (P 29)
1. 불변적 복제의 능력은 지녔으나 합목적적인 장치는 갖추지 않은 대상을 적어도 상상할 수는 있다. 결정구조가 이러한 예다. 물론 생명체에 비해 그 복잡성의 수준이 훨씬 낮긴 하지만 말이다.
2. 합목적성과 불변성 사이의 구분은 단순한 논리적 추상이 아니다. 다름 아닌 화학적 고찰이 이 구분을 정당화해준다. 실로 생물학적으로 필수적인 두 종류의 고분자인 단백질과 핵산 중, 단백질은 거의 모든 합목적적인 구조와 작용을 전담하며, 유전적 불변성은 전적으로 핵산과만 관련된다.
3. 다음 장에서 살펴보겠지만, 생명세계에 대한, 또한 생명세계가 우주의 나머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모든 (종교적 · 과학적 · 형이상학적) 이론들은 이 구분을 명시적으로든 비명시적으로든 받아들이고 있다. (P 33)
형이상학적 생기론의 가장 저명한 추진자는 의심할 바 없이 베르그송이다. 논리는 결여하고 있을 망정 시적 요소는 넘치도록 갖추고 있는 그 은유 가득한 변증술과 매력적인 필치 덕분에, 그의 철학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오늘날에는 이 철학이 거의 완전한 불신 속으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그의 『창조적 진화』를 읽지 않고서는 대학입학 시험을 통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철학은 생명을 어떤 ‘약동’이나 ‘흐름’으로 생각하는 것에 전적으로 근거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되는 생명은 생명 없는 물질과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것으로서, 물질과 다투고 그것을 ‘주파하여’ 유기적으로 조직화되도록 만든다. 그런데 거의 모든 다른 생기론자들과는 달리, 베르그송의 생기론은 목적론적이지 않다. 베르그송은 생명의 본질적인 자발성을 어떤 결정론의 테두리 안에 가둬두는 것을 거부한다. 진화란 곧 생의 약동으로서, 어떤 목적인目的因이나 작용인도 갖지 않는다. 인간은 물론 진화가 도달한 최고의 단계지만, 진화란 결코 인간을 목적으로 지향하여 이뤄지지 않았고, 인간에게 도달하게 될 것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차라리 인간이란 창조적인 ‘생의 약동’의 완전한 자유가 드러난 것이고 이 완전한 자유를 증언하는 것이다. (P 46)
- 자크 모노 (조현수 옮김). 철학. 우연과 필연.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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