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去來辭(귀거래사) / 陶淵明(도연명)
돌아가자!
논밭 장차 황폐해지거늘 어이 아니 돌아가리.
지금껏 내 마음 몸의 부림 받았거니,
어찌 홀로 근심에 슬퍼하고 있는가?
이미 지난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알았으니,
이에 앞으로의 일은 올바로 할 수 있음을 알았도다.
실로 길 어긋났으나 멀어진 건 아니니,
지난 것 잘못 되였음에 이제부터라도 바르게 하리라.
…………(중략)…………
돌아가자!
사귐도 어울림도 이젠 모두 끊으리라!
세상과 나는 서로 어긋나기만 하니,
다시 수레를 몰고나간들 무엇을 얻겠는가?
…………(중략)…………
깊고 굽이져 있는 골짝도 찾아가고,
험한 산길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도 한다.
물오른 나무들 싱싱하게 자라나고,
샘물은 퐁퐁 솟아 졸졸 흘러내린다.
만물은 제 철을 만나 신명이 났건마는,
이제 나의 삶은 휴식년을 절감한다.
…………(중략)…………
아서라!
세상에 이내몸 얼마나 머무를 수 있으리오!
가고 머물음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무엇위해 어디로 그리 서둘러 가려는가?
부귀영화는 내 바라던 바 아니었고,
신선 사는 곳도 기약할 수 없는 일.
좋은 시절 바라며 홀로 나서서,
지팡이 세워두고 김매고 북돋운다.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어보고,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도 지어본다.
이렇게 자연을 따르다 끝내 돌아갈 것인데,
천명을 즐겼거늘 다시 무엇을 의심하리.
도시인이 느지막히 농촌으로 들어가 생활한다는 것은,
그동안 잊혀진 감성을 되찾기 위해 숲길을 거닐며 사색에 잠겨보거나 산이 내뿜는 정기를 마시며 호연지기를 배우기도 하고, 그 동안의 묵은 때를 벗고 세속적 고독도 견딜 수 있겠다는 은둔자로서의 의연함도 터득하게 되고, 약간의 노동력을 겻들이면 순수한 자연식품을 생산하여 자급자족하는 전원생활을 즐길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 아닐까. 거기에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떠올리면 조금은 목가적인 기분으로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정말 그럴까?
- 아직은 일주일의 반을 보내고 있을 뿐, 정착하기엔 힘에 겨운 곳
부모님 선산과 가까운 곳, 약간의 쓸쓸함과 조용히 삶을 관조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고 흘러온 곳,
순수한 노동과 글쓰기 그리고 생활의 여백을 즐길 수 있는 곳,
도연명의 삶에서 그다지 멀리 나가지 않은 이 땅이 뿜어내는 흙향 속에서 나보다 먼저 살아온 생물들과 더불어 생활하며 삶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 곳. -
그러나 가끔씩 찾아온 이 묵정밭은 쓰레기밭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이곳 주변은 농사 짓는 사람이 거의 없이 전원주택화 했거나, 공장, 그리고 길 주변으로는 모텔이 들어서고 있는 실정이다.
이곳 사람들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로 쓰레기를 태우고, 아무 곳에나 묻는다. 나중에 밭을 매다보면 여기저기 생활쓰레기들이 튀어나온다.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인지 남의 나무를 베는 것을 풀 뽑는 것만큼이나 쉽게 생각하는 이웃도 있다. 어쨌든 내버려둘 수 없어서 농막을 짓고 일단 살아보기로 했다. 살다보면 나아지지 않겠나 하는 심정으로.
그래서 처음부터 부닥치는 문제들을 차근차근 알아보고자 한다.
어쩌면 중구난발, 이것저것 쓰는 글들이 산골 이야기를 벗어나 혼란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시작을 해야 뭔가가 손에 잡히고 밝혀질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세월이 흘러 이 글이 마무리 될 때쯤이면 나의 새로운 귀거래사가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축석령의 위치
<축석령은 의정부와 포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고개다.>
축석령의 유래
축석령은 천보산 기슭에 있는 고개로 포천군 소흘면과 경계를 이루며 의정부시 북쪽 관문이 된다. 일명 2백리고개라고도 하는데, 이 고개를 분수령으로 하여 북쪽으로 흐르는 물은 포천천을 거쳐 한탄강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중랑천을 거쳐 한강에 이르므로 철원과 서울까지의 거리가 2백리가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축석령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지금으로부터 3백여년전 포천 어룡리에 오백주라는 효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가 귀성도호사로 있을 때 고향에 계신 부친이 병환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벼슬을 버린채 고향에 돌아와 부친의 병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어떠한 약도 차도가 없어 하늘을 탓하며 탄식만 하고 있는데 꿈에서 산신령이 크게 꾸짖으며 "네 아비의 병은 석밀을 먹으면 낫는데 게으름만 피우고 있느냐"하고 호령하자 그는 석밀을 구하기 위해 정과 망치를 들고 온 산을 헤매다가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가 "내가 죽으면 부친을 누가 돌본단 말인가"하며 통곡하자 호랑이는 간데없고 바위만 남아 바위틈에서 석밀이 흘러 나왔다. 이에 부친의 병이 나으니 사람들이 오백주의 효성에 산신령이 가호를 베풀어 바위를 호랑이로 변신시켰다고 하여 그 바위를 범바위라고 불렸으며, 그 후 오백주가 매년 이 바위에 와서 고사를 지내고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다 하여 축석령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 출처 : 의정부시청 지명유래집에서
<샛골은 축석령에서 민락동 가는 방향 우측에 있는 작은 사이골을 말한다.>
예전에 이 축석길은 다른 길이었다. 옛길을 걸었을 때가 생각난다. 주변은 온통 논과 밭, 그리고 숲이었고, 왕복 2차선으로 버스가 몇 대 정도 다니던 길. (그래, 그 길을 다시 한 번 가봐야 될 것 같다.) 그 때 다니던 시골길은 이제 뒷길로 사라지고 새로 6차선 도로가 새롭게 직선으로 뚫려 훨씬 편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졌지만 요즘은 출퇴근시간이나, 연휴철에는 극심한 정체구간 중의 하나로 유명한 고갯길이 됐다. 광릉, 중문의대, 일동온천, 이동갈비, 산정호수, 명성산, 철원을 가려면 통과하는 길목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축석검문소는 도로 중앙에 위치했었는데 교통량이 많아지는 관계로 의정부 방향 우측 도로변으로 이동했다.
<축석령에서 의정부 방향>
<축석령에서 의정부 방향 - 마즌편 도로에서>
<축석령에서 포천 방향>
<축석령에서 민락동 방향>
<축석령에서 광릉길 방향>
<광릉길 방향>
사진으로만 보면 결코 자연스럽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의정부가 시세 확장을 하고, 남양주가 새롭게 신도시를 형성하고, 민락동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 조성, 포천 송우리가 커지고 있어 그 길목에 있는 축석령도 이제 호젓하게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도로변을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축석령 중심을 벗어나면 아직도 멧돼지가 오소리가 고라니가 나타나는 곳이기도 하다.
축동안이나, 샛골이 그런 곳이었지만 그러나 샛골부터 점점 병들어 가고 있다. 점,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