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 248 >
여행이란 무엇일까? 여행의 기술을 쓴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은 현실에서 만나는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을 벗어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 견해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그의 말이 옳다면 여행은 도피 수단밖에 되지 않으며 일상을 증오로 볼 뿐이어서 불건전하다.
내가 여행을 통해 얻는 첫 번째 유효함은 '진실의 발견'에서 비롯된다. 우리에게는 일상의 삶을 사는 동안 알게 모르게 축적되는 환상이 있다. 저 멀리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사는 이들과 그들의 환경에 대해 읽고 들은 지식으로 생긴 상상인데 이는 가공이라 거짓이기 쉬우며 그래서 힘이 없다. 건축은 현실의 땅을 디디고 선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통해 현장에 서서 그 건축의 실체를 보면서 내가 가졌던 환상이 무너지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되는 경험을 수없이 해왔다. 바로 진실은 현장에 있고, 그 실체에는 동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 온 사람의 얼굴은 늘 광채를 띠게 된다.
여행이 우리의 삶에 유효한 두 번째는, 어쩔 수 없이 '아웃사이더'의 입장이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타자화된 이방인은 싫든 좋든 현실에서 비켜서서 그 현실을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를 통해 저울질하며 스스로를 사유의 세계로 모는 자이다. 자기 스스로를 제도권 밖으로 추방하여 경계 속의 현실을 목도하고 때론 비판하며 성찰하는 자, 이를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이라고 했다.
그 결과로 여행은 우리를 종파주의와 그릇된 편견과 헛된 애국심에서 자유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자주하는 사람은 가진 것이 별로 없어도 더없이 풍요롭게 보인다. (P 16)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빌라 로툰다가 혼자 사물을 지배하며 즐기는 집이니 한자로 쓰면 역시 독락당 아닌가. 그렇다면 이 집과 전혀 다른 회재의 독락당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음이 홀로 서야 이가 생긴다."는 회재에게 독락의 뜻은 '혼자서 즐기는 집'이 아니라 '홀로 됨을 즐기는, 고독의 집'이었다. (P 51)
거의 모든 행정의 결과는 건축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진다. 그래서 건축에 대한 정부의 의식이 대단히 중요하지만 우리에겐 그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국가에서 발주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턴키Turn-key'라는 이름으로 건축가와 시공자를 짝짓기 하여 뽑게 한다. 세계에 유래가 없다. 검사와 변호사의 관계처럼 서로 감시하는 직능인 이 둘더러 한 팀이 되라는 것은 불륜을 노골적으로 저지르라는 말이어서 이를 맹비난했지만 그 먹이사슬은 너무도 완강하다. 이에 응하는 국내 설계업자는 시공사가 초청한 외국 건축가들의 하청업체를 자청하는 꼴이다. (P 64)
여행은 혼자 가는 게 제일 좋다고 한다. 경험으로 볼 때 둘이 가면 반만 여행하는 셈이 되고, 셋이 가면 하나는 왕따 되기 쉽고, 넷은 편이 갈라진다. 다섯이 가면 식탁에 앉기가 불편하고 숙박도 난감하며 차를 빌리거나 탈 때도 부담된다. 몇 사람이 같이 가야 한다면 여섯이 제일 좋다. 9인승 밴을 렌트하면 짐도 넉넉히 실을 수 있고 방 배정이나 식탁 사용도 편하다. 무엇보다 여섯은 토론이 가능한 숫자여서 여행 도중에 좋은 이야기가 많이 만들어진다. 그보다 많으면 단체훈련이지 여행이 아니다. (P 72)
건축을 공부한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통독 전인 1987년에 만든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이 도시의 풍경은 시간을 정지시킨 흑백이다. 그 영화의 자막에는 이런 시가 나온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나는 여기에 있고 저기에는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조각은 아닐까?
베를린을 여럿이 여행하는 것, 그것은 야만이다. (P 79)
- 승효상. 에세이.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컬처그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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