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바람 그리기

붉은 꽃, 시클라멘 / 이문형

이문형 2014. 3. 1. 11:40

        붉은 꽃, 시클라멘  /  이문형

 

 

맹목적인 사랑이 종교가 된다는 것을

꽃집을 떠나지 못하는 너를 바라만 보다

철제계단을 내려설 때 알았다

 

너는 자신을 태울만큼 붉었다

사랑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의 삶을 치유하듯

피멍을 몸 밖까지 한껏 붉게 내비친 이유가

상사뿐일까

한 몸 안에 있을지라도 생애에

스스로 도달하지 못하는 길이 있어

덧없는 바람이라도 물들일 태세였다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속속들이 보여만 주는 사랑일지라도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으로

피보다 붉게 타오르는 고요함이

단절된 유리벽 안에서 차라리 경건하다

안으로 깊게 품은 빛이 어디를 향하는지 웅숭깊다

 

사람들은 붉은 것을 안쪽 깊은 곳에 쟁여놓고 산다

몸 밖으로 붉은 것이 드러나면 그것은 아픔이거나 절망이다

너는 오늘따라 유난히 붉었고

그래서 세상은 더 푸르다

 

   「바람 그리기」시편 : 책나무출판사

 

 

 

 

 

 

 

'(시집) 바람 그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의 경계 / 이문형  (0) 2013.06.18
袈裟魚 / 이문형  (0) 2013.03.03
침향 / 이문형  (0) 2012.09.03
자작나무에게로 / 이문형   (0) 2011.12.17
첫눈 / 이문형   (0) 2011.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