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

흑산도 / 김선태

이문형 2013. 11. 21. 02:19

                                    흑산도   /  김선태

 

 

상한 짐승처럼 절뚝거리며 스며들고 싶었다 더는 갈 수 없는 작부들의 종착역

 

슬픔은 더 깊은 슬픔으로 달래라 했던가

 

늙은 작부 무릎에 슬픔을 눕히고 그네의 서러운 인생유전을 따라가고 싶었다

 

삭을 대로 삭은 홍어 살점을 질겅질겅 씹으며 쓰디쓴 술잔을 들이켜고 싶었다

 

그렇게 파란만장의 시간을 가라앉혀 제대로 된 슬픔에 맛이 들고 싶었다

 

때론 누추한 패잔병처럼 자진 유배를 떠나고 싶었다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천형의 유배지

 

절망은 더 지극한 절망으로 맞서라 했던가

 

후미진 바닷가에 갯고둥 하나로 엎어져 흑흑 파도처럼 기슭을 치며 울고 싶었다

 

다시는 비루한 싸움터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애간장 까맣게 타버린 한 점 섬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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