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 241>
신화를 창조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다. 피카소는 예술을 가리켜 “우리로 하여금 진실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거짓말”이라 했다. 예술과 종교를 창조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또 우리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데카르트의 언명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의 대안으로 “설명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제안하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뇌과학은 ‘생각하는 뇌’를 들여다보기에 바빴다. 인간이나 다른 동물들이 사고할 때 뇌의 어느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촬영하기에 급급했다. 나는 이제부터 뇌과학자들이 우리의 ‘설명하는 뇌’를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명하는 뇌’는 아마 ‘생각하는 뇌’와 ‘느끼는 뇌’가 보다 긴밀하게 협조하는 관계 속에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통섭은 바로 이 ‘설명하는 뇌’의 작용이다. 나는 21세기 뇌과학이 이 두 뇌들의 합주에 귀를 기울여 주기 바란다. (P 19)
진리는 철새처럼 어느 정도 정해진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생물학에서 출발한 문제가 경제학과 정치학을 거쳐 심리학과 수학에 정착한다. 사회학의 문제인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행정학과 법학은 물론 기상학과 화학 그리고 음악의 영역까지 그 가지들을 뻗는다. 그동안 우리는 이른바 학제적 연구라는 걸 한답시고 적지 않은 시도들을 해 왔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의 대부분은 단순히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자들이 제가끔 자기 영역의 목소리만 전체에 보태는 다학문적 유희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는 진정 학문의 경계를 허물고 일관된 이론의 실로 모두를 꿰는 범학문적 접근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통섭의 시대를 맞이하는 길이다. (P 21)
중국 격언에 있듯이 사물에 올바른 이름을 지어 주는 데에서부터 지혜가 싹트는 법이다. (P 32)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모든 과학자들은 손에 닿을 것처럼 보이나 결국 잡지 못하고 좌절하고 마는 탄탈로스(Tantalos.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로 배가 고파 과일을 따먹으려고 손을 뻗으면 과일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 버리는 징벌을 받았다.)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원자가 모든 운동을 멈추는 절대 0도에 근접하기 위해 지난 몇십 년간 온갖 노력을 다해 온 열역학자들과 흡사하다. 열역학자들은 1995년 절대 0도보다 몇 십억 분의 1도 정도 높은 온도까지 접근하여 보스아인슈타인 응집물을 만들어 냈다. 이 응집물은 기체, 액체, 고체를 넘어서는 새로운 물질 상태이다. 온도가 떨어지고 압력이 높아지면 기체는 액체로 응결되고 이내 고체가 된다. 이런 과정이 계속되면 보스아인슈타인 응집물이 나타난다. 많은 원자들이 마치 같은 양자 상태에 존재하는 하나의 원자처럼 행동하는 물질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완전한 절대 0도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할 뿐 여전히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P 36)
다이달로스는 그의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크레타 섬을 탈출한다. 이카로스의 날개는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을 향해 날았고 이내 그의 날개는 녹아 내렸다. 마침내 그는 바다 속에 빠지고 만다. 이것이 신화 속에 나타난 이카로스의 운명이다. 그러나 의문이 남는다. 그는 그저 멍청한 소년이었는가? 나는 오히려 그의 대담함이 인간의 고귀함을 구원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위대한 천체물리학자인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는 그의 스승이었던 아서 에딩턴 경의 정신을 기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태양이 우리 날개의 밀랍을 녹이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높이 날 수 있는 지 알아 보자.” (P 38)
- 에드워드 윌슨(최재천, 장대익 옮김). 학문. 통섭. (주)사이언스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