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2

우연과 필연 (7)

이문형 2012. 8. 6. 13:56

<봉지털기 239-7>

유일한 돌연변이들이란 적어도 이 합목적적인 장치가 가지고 있는 정합성을 감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 장치가 이미 지향하고 있는 방향으로 그 정합성을 더 강화시켜주는 것들이거나, 혹은 이보다 훨씬 더 드문 경우이지만, 이 장치를 새로운 가능성으로서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들이다.

돌연변이가 처음 나타날 때 이 합목적적인 장치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느냐가, 우연으로부터 태어난 이 새로운 시도를 잠정적으로 받아들일지 혹은 영속적으로 받아들일지. 그것도 아니면 거부할지를 결정하는 최초의 본질적인 조건이 된다. 자연선택에 의해 심판받는 것은 합목적적인 기능 상태, 즉 건설적이고 제어적인 상호작용들의 네트워크가 갖는 속성들의 전체적인 표현인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렇기 때문에 진화 자체가 어떤 의도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다시 말해 조상대대로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을 계속 이어가고 확장해가려는 의도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P 174)

 

1억 5천만 년 전의 굴은 오늘날 사람들이 식탁에서 맛보는 굴과 똑같은 모습과 똑같은 향취를 가진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의 세포 - 그 화학적 체제가 (예컨대 유전암호의 구조나 번역의 복잡한 메커니즘 따위가) 오늘날까지 불변적으로 그대로 전해져 오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세포라고 말할 수 있다. - 는 20억 내지 30억 년 전부터 존재해온 것으로, 이 까마득히 오래된 옛날부터 이미 자신의 기능적 정합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강력한 분자적 사이버네틱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P 176)

 

DNA 암호 텍스트 중에 있는 한 글자가 다른 글자로 대체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점 돌연변이는 가역적인 현상이다. (P 177)

 

생명세계에서 일어나는 진화는 필연적으로 비가역적인 과정이며 따라서 시간 속에서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방향은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즉 열역학 제2법칙이 명하는 방향과 같은 방향이다. 이 사실은 단순한 유사성 이상의 것이다. 진화의 비가역성을 수립하는 것이 통계학적인 고찰인 것과 마찬가지로 열역학 제2법칙도 똑같이 통계학적 고찰에 근거해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진화의 비가역성을 열역학 제2법칙이 생명세계에서 표현된 것으로 보는 것은 정당하다. 이 제2법칙은 어디까지나 통계학적인 예측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거시적인 시스템이, 그 진폭이 매우 작은 운동에 있어서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엔트로피의 고개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을 배제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런 예외적인 운동들이 생명체들의 복제 기구에 의해 포획되고 복제되어 자연선택에 의해 보존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즉 미시적 우연이라는 거대한 저장고가 품고 있는 무한히 많은 우발적 사건들 중에서 다른 모든 사건들을 제쳐둔 채 오로지 극히 드물게 값진 사건들만을 선택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진화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종의 타임머신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이 기구에 의해서 얻어지는 결과들 - 즉 진화가 일반적으로 보다 높은 단계를 향하여 상승해가는 경향을 보이는 것, 합목적적인 장치가 계속적으로 개선되고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 등 - 이 어떤 이들에게는 기적적으로, 또 다른 이들에게는 역설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P 179)

 

항원이 하는 일이란 그저 선택권자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다. 즉 다른 세포들을 제치고 오직 자신을 식별해낼 수 있는 항체를 생산하는 세포만이 증식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P 180)

 

 - 자크 모노 (조현수 옮김). 철학. 우연과 필연.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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