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2

우연과 필연 (9)

이문형 2012. 8. 25. 01:33

<봉지털기 239-9>

시뮬레이션 장치는 자기 자신의 체험의 결과들을 축적해감으로써, 끊임없이 더욱더 풍부해져가는 예측 도구이자 발견과 창조의 도구가 된다. 이러한 시뮬레이션 장치의 주관적인 작용의 논리를 분석함으로써 우리는 객관적인 논리의 규칙을 제정하고, 수학과 같은 새로운 상징적 도구들도 창조할 수 있게 되었다. (P 223)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또한 화석이기도 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자기 안에, 자신을 이루는 단백질의 미시적 구조에 이르기까지, 자기 선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이는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사실 인간은 이중적 진화, 즉 신체상의 진화와 ‘관념상의’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도 훨씬 더 자기 선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P 228)

 

적어도 인간종의 발달과 확장이 어느 정도의 단계에 이른 순간부터, 종족 간의 혹은 인종 간의 투쟁이 진화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네안데르탈인들이 아주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은 우리 인간의 선조인 호모사피엔스가 저지른 인종말상의 결과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것이 최후의 사건도 아니다. 역사 속에서 행해진 수많은 인종말상의 해위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선택의 압력이 인류를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도록 몰고 갔을까? …중략…

중요한 것은 수십만 년에 걸친 이러한 인간의 문화적 진화가 인간의 신체적 진화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동물에게서보다 인간에게서는, 그의 무한히 우월한 자율성으로 인해, 바로 그의 행동이 선택의 압력 방향을 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행동이 그저 자동적으로 행해지던 것을 넘어서 문화적 성격을 띠게 된 이후부터는 문화적 특징 자체들이 게놈의 진화에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진화가 죽 이어져 오다가 문화적 진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드디어 게놈의 진화와 완전히 동떨어진 채 저 혼자서만 계속 진화하는 시기가 오게 된 것이다. (P 230)

 

핵폭탄의 위협과 마찬가지로 이 영혼의 질환도, 아주 간단한 하나의 생각으로부터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연은 개관적이라는 생각, 참된 인식(지식)은 오직 사유와 실제 경험 사이의 체계적인 대면 이외의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얻어질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류 사상사에 나타난 수많은 사상의 왕국들 가운데 가장 간단하고 명확한 생각(사상)에 해당한다. 이처럼 간단하고도 명확한 생각이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이후 무려 10만 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완연하게 나타날 수 있었다는 점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P 234)

 

가장 강력한 침투력을 가진 사상들이란 인간에게 우주의 거대한 내재적 운명 속에서 그의 자리를 배정해줌으로써 인간을 설명하는 사상, 그리하여 이 내재적 운명 속에서 인간의 불안을 해소시켜주는 사상일 것이다. (P 236)

 

어느 누구도 법을 완전히 부정하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 구조가 그토록 오랜 기간 거대한 힘을 가지고서 말 잘 듣는 모은 선택하고 그렇지 않은 놈은 도태시키는 역할을 수행해왔을 터이므로, 인간 뇌의 선천적인 사고 범주들의 유전적 진화에 어떠한 영향을 기치지 않았을 리 없다. 즉 이러한 유전적 진화는 인간의 뇌를 부족집단의 법을 잘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진화되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법에다 어떤 거대한 존엄성을 갖도록 그 근거를 부여할 수 있는, 어떤 신화적 설명을 만들 필요성(요구)을 느끼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되도록 했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들의 후손이다. 어떤 신화적 설명에 대한 요구, 존재의 의미를 찾아 헤매도록 만드는 불안, 이러한 것을 우리는 이들로부터 계승한 것이다. 모든 신화와 종교, 모든 철학과 과학은 바로 이 불안으로부터 창조된 것이다.

…중략…

사회적 제도의 안정성은 모두 유전적으로 전수되어온 덕분이지 문화적 유산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사회적 행동은 전적으로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 자동적인 것이다.

인간이 형성하는 사회적 제도는 순전히 문화적인 것이기에, 결코 이들에게서와 같은 정도의 안정성에 이를 수 없다. 게다가 누가 그걸 바라기나 하겠는가? 신화니 종교니 거대한 철학적 체계니 하는 것들을 발명하고 구축해야 했던 것은, 인간이 순전한 자동성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했던 대가였던 것이다. 하지만 순전히 문화적인 유산만으로는, 바로 이것 혼자만의 힘으로는 사회적 제도를 지탱하기에 역부족이다. 문화적 유산 이ㅚ에도 유전적인 뒷받침이 필요했으며, 이 유전적 뒷받침은 다름 아닌 이러한 문화적 유산을 마치 정신이 갈구하던 자양분인 양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이게 사실이 아니라면, 모든 사회적 제도의 기초에 종교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서로 아주 상이한 다양한 신화와 종교, 철학적 체계들 속에 본질적으로 동일한 ‘형태’발견되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P 238)

 

 - 자크 모노 (조현수 옮김). 철학. 우연과 필연.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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