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 239-3>
…오류들의 원천에는 확실히 인간중심주의적인 환상이 자리 잡고 있다. 태양중심설도, 관성(불활성)의 원리도, 객관성의 원리도 이 옛날의 신기루를 쫓아내는 데 충분하지 못했다. 진화론도 처음에는 이 환상을 사라지게 만들기는커녕 그것에 새로운 실체를 부여해주는 듯했다. 진화론은 인간이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은 아니더라도 모든 시간 동안 언제나 기다려온 우주 전체의 황태자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든 것이다. 마침내 신은 죽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자리를 이 새롭고 위대한 존재가 대신 차지했기 때문에 이때부터 과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몇몇 소수의 원리들로부터 (생명권과 인간을 포함한) 실재 전체를 설명해내는 어떤 통합적 이론을 만들어내는 데 존재하게 된다. 이러한 의기양양한 확신이 19세기의 과학주의적 진보론을 성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변증법적 유물론자들은 자신들이 이미 이런 통합적 이론을 만들어냈다고 믿었다.
엥겔스가 열역학 제2법칙을 공식적으로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 원리가 인간과 인간의 사유가 우주적 성향운동의 필연적인 산물이라는 확신을 위태롭게 하는 것으로 그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자연변증법』 서문에서부터 이처럼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반대를 밝히는 것과 그가 이 주제를 곧바로 그의 열렬한 우주론적 예언과 - 그는 이 예언에서 인류에게, 혹은 적어도 ‘생각하는 두뇌’에게, 영원회귀를 약속한다. - 연결 짓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엥겔스가 약속하는 영원회귀는 실로 인류의 가장 오래된 신화들 중 하나로 회귀하는 것이다. (P 67)
반드시 존재해야 할 이유(의무)는 없고 단지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권리)만을 갖고 있다는 이 사실이 돌맹이의 경우라면 충분하겠지만, 우리 자신의 경우라면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떤 필연적인 이유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기를, 우리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우리의 존재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기를 원한다. 모든 종교와 거의 대부분의 철학, 심지어 과학의 일부까지도 자기 자신의 우연성을 필사적으로 부인하려는 인간의 지칠 줄 모르는 영웅적 노력의 증거다. (P 71)
단백질이란 매우 거대한 분자로서, 그 분자량이 10,000에서부터 시작되며 1,000,000 이상 나가는 것까지 있다. 이러한 고분자는 ‘아미노산’이라는, 분자량이 약 100 정도인 화합물이 계속적으로 결합하여 중합(重合)된 결과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모든 단백질은 그 수가 100개에서 10,000개에 이르는 아미노산 잔기(殘基)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수많은 잔기는 불과 스무 가지의 화학종에 모두 속하는 것으로, 이 스무 가지 화학종은 박테리아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에서 발견된다. 생명체의 구성이 이처럼 단조롭다는 사실은, 생명체들의 거시적인 구조의 놀라운 다양성이 실은 미시적인 구조의 역시 몰랄 만한 단일성에 근거하고 있음을 예증하는 것이다. (P 77)
평균적인 성능을 가진 아로스테릭 효소 1분자의 무게는 10-17그램을 단위로 해서 잴 수 있다. 전자 릴레이보다 10-15의 단위로 더 적게 나가는 무게인 것이다. 이 천문학적인 숫자는, 맥스웰-질라드-브리유엥의 도깨비보다도 훨씬 더 똑똑한 이런 미시적인 존재들을 몇 백 종 내지는 몇 천 종이나 갖춘 한 개의 세포가 자유로이 행할 수 있는 ‘사이버네틱 능력’이 (즉 합목적적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일지를 짐작하게 한다. (P 104)
대장균이 갈락토시드를 포함하지 않은 배양기 속에서 발육할 때에는 이 세 가지 단백질이 합성되는 속도가 거의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느리다. 평균하여 5세대마다 1분자의 비율로 합성된다. 그런데 갈락토시드를 (이 경우 ‘유도물질’이라 불린다) 배양기 속에 넣으면 거의 즉시 (대략 2분 내로) 세 가지 단백질의 합성 속도는 천 배로 증가하고 유도물질이 있는 한 이 속도는 계속 유지된다. 유도물질이 제거되면 합성 속도는 2~3분 이내로, 다시 애초의 속도로 곤두박질친다. (P 110)
- 자크 모노 (조현수 옮김). 철학. 우연과 필연.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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