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

이별 / 허만하

이문형 2013. 4. 3. 13:15

                                                          이별  /  허만하

 

 

자작나무 숲을 지나자 사람이 사라진 빈 마을이 나타났다. 강은 이 마을에서 잠시 방향을 잃는다. 강물에 비치는 길손의 물빛 향수 행방을 잃은 여자의 음영만이 짙어지고

 

파스테르나크의 가죽장화가 밟았던 눈길. 그는 언제나 뒷 모습의 초상화다. 멀어져가는 그의 등에서 무너지는  눈사태의 눈부신 눈보라가 그치고 모처럼 쏟아지는 햇살마저 하늘의 높이에서 폭포처럼 얼어있다.

 

우랄의 산줄기를 바라보는 평원에서 물기에 젖은 관능도 마지막 포옹도 국경도 썰렁한 겨울 풍경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선지피를 흘리는 혁명도 평원을 건너는 늙은 바람도 끝없는 자작나무에 지나지 않는다. 시베리아의 광야에서는 지도도 말을 잃어버린다. 아득한 언저리뿐이다.

 

평원에 서

있다는 것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그는 뒷모습이다.

휘어진 눈길의 끝

 

엷은 썰매소리 같은 회한의 이력

아득한 숲의 저켠

 

풍경을 거절하는

나도

쓸쓸한 지평선이 되어 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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