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

배고픈 저녁 / 이홍섭

이문형 2014. 4. 20. 16:01

               배고픈 저녁  /  이홍섭

 

 

1

어릴 때, 강 건너 산 위에 화장터가 있었다

이따금 연기가 피어오르면

지나가는 구름도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곤 했다

구름이 다시 가던 길을 가면 배고픈 저녁이 왔다

 

2

어머니는 길 떠나는 외할머니의 관 위에 손을 얹으시고는

깊은 산 속 나뭇가지 끝에서 우는 새처럼

높고 긴 울음을 우셨다

그날 이후 새소리는 더 슬펐다

 

3

스님, 불 들어갑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

무덤 하나가 불을 껴안고 타올랐다

밤새 홀로 묻고 홀로 답하느라 온통 붉어진 집 한 채

새벽이 되자 그마저 재가 되었다

 

4

구름이 다시 가던 길을 가는 저녁

새는 나뭇가지 끝에서 울고

서쪽 하늘은 불 먹은 듯 붉게 타오른다

배고픈 소년 하나가 털래 털래 집으로 돌아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