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

화병 / 김기주

이문형 2013. 2. 5. 00:49

       화병  /  김기주

 

 

절간 소반 위에 놓여 있는

금이 간 화병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물을 더 부어 봐도

화병을 쥐고 흔들어 봐도

물은 천천히, 이게

꽃이 피는 속도라는 듯

조용하게 흘러나온다

아무도 없는 외진 방안

잠시 핀 꽃잎을 바라보느라

탁자 위에 생긴 작은 웅덩이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꽃잎보다 키를 낮출 수 없는지

뿌리를 보려 하지 않았다

 

한쪽 귀퉁이가 닳은 색 바랜 소반만이

길 잃은 물방울들을 돕고 있었다

서로 붙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물방울들에게,

가두지 않고는 높이를 갖는 법을

모나지 않게 모이게 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무릎보다 낮은 곳

달빛 같은 동자승의 얼굴이

오래도 머물다 간다

 

 - 2013 한국경제 신춘문예 시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