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2

통섭 (3)

이문형 2012. 11. 27. 14:14

<봉지털기 241-3>

상이한 유전 형태의 차별적 생존과 번식으로 정의되는 자연선택은 필요에 따라서만 개체를 만든다. 개체의 능력은 니치(niche. 원래의 뜻은 벽감. 어떤 종이 소비하는 자원들의 집합과 그 종이 점유하는 서식지. - 옮긴이)에서 자신들의 적응도를 극대화하는 선까지만 진화한다. 모든 종류의 나비, 박쥐, 물고기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를 포함한 영장류는 그들 나름의 독특한 니치를 갖고 있다. 이것은 각각의 종이 저마다 고유한 감각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세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선택은 과거 역사의 조건들과 그때그때 일어나는 사건들에 의해서만 인도된다. 예컨대 나방은 대형 유인원의 효과적인 먹이가 되기에는 너무 작고 소화도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의 경우에는 그런 나방들을 잡을 수 있는 반향 정위 체계가 진화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는 불투명한 물속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전기 감각은 우리 종의 생존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P 104)

 

인류가 진화의 투기장에서 만난 세 가지 조건 혹은 세 번의 행운이 과학 혁명을 만들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창조성과 끝없는 호기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가 우주의 본질적 속성들을 추상화하는 능력을 타고났다는 것이었다. 이 능력은 신석기 조상이 갖기 시작했던 것이지만 생존의 필요를 넘어서서 발전된 것처럼 보인다.(바로 이것이 첫 번째 수수께끼다.) 3세기(1600~1900)라는 기간은 인간 두뇌가 유전적 진화를 통해 발전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인류는 그 시간 동안 과학 기술의 시대를 열었다.

세 번째는 물리학자인 유진 위그너가 언젠가 말했듯이 수학이 자연과학에 놀라도록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아직도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이 그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수학 이론과 물리학 실험 자료의 대응은 신비로울 정도다. 이런 의미에서 수학이 과학의 자연 언어라는 믿음은 지당해 보인다. (P 105)

 

어떤 이론이든 타당하며 흥미롭다는 생각. 하지만 과학 이론은 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학 이론은 반례들에 직면하면 폐기되도록 특별히 설계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이왕 틀린 것이라면 빨리 폐기되면 될수록 좋다. “실수는 빨리 할수록 좋다.”라는 격언은 과학적 실천에서도 하나의 규칙이다. (P 111)

 

최대한으로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학은 세상에 대한 지식을 모아서 그 지식을 시험 가능한 법칙과 원리로 응축하는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탐구이다.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구분하는 첫째 기준은 반복 가능성이다. …… 둘째 기준은 경제성이다. …… 셋째 기준은 측정이다. …… 넷째 기준은 발견 기법이다. 최고의 과학은 종종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방향으로 후속 발견들을 자극한다. 그리고 새로운 지식은 원래 원칙의 진위를 다시 시험해 보게끔 한다. 마지막으로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가르는 다섯째 기준은 통섭이다. 즉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여러 설명들을 서로 연결하고 일치시킬 수 있을 때 가장 경쟁력 있는 설명이 된다. (P 113)

 

다음은 환원주의의 일반적인 작동 방식이다. 마치 사용자 매뉴얼을 보는 듯할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 그 체계 주변을 여행하도록 해라. 그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라. 그 질문을 잠시 내려놓고 그것이 함축하는 요소들과 물음들을 시각화하라. 대안적 해답들도 고려하라. 어느 정도의 증거들로 명료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 해답들을 말로 표현하라. 만일 너무 많은 개념적 난점들이 발생하면 뒤로 물러서라. 그리고 다른 질문을 찾아라. 마침내 우리가 파고들 수 있을 만큼 약한 지점을 찾으면 결정적인 실험을 가장 쉽게 수행할 수 있는 모형 체계를 찾아라. 예컨대 입자물리학에서는 그런 체계가 통제된 복사 현상일 것이고 유전학에서는 번식 속도가 빠른 개체일 것이다. 그 체계를 완전히 숙지하라. 아니, 그 체계에 사로잡히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세부 사항을 사랑하고 그것에 대한 감을 익혀라.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질문에 대한 답이 수긍이 가도록 실험을 설계하라. 새로운 질문과 새로운 체계에도 적용해 볼 수 있도록 그 결과를 활용하라. 다른 사람들이 이런 절차에서 이미 얼마나 멀리 앞서 나아갔는지를 검토해 보고(앞서간 사람들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어떤 지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지를 결정하라.

대체로 이런 식의 절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환원주의가 과학의 일차적이고 핵심적인 활동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분해와 분석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가치와 의미에 관한 철학적 반성을 통해 종합과 통합의 능력을 단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P 114)

 

 - 에드워드 윌슨(최재천, 장대익 옮김). 학문. 통섭. (주)사이억스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