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지털기2

우연과 필연 (11)

이문형 2012. 9. 16. 10:14

<봉지털기 239-11>

참으로 객관적인 체계에서는 지식과 가치 사이의 혼동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금지, 즉 객관적인 지식을 근거 지우는 이 ‘첫 번째 계명’은, 그 자체로서는 객관적이지 않으며 그럴 수도 없다. 바로 이 점이 핵심이며, 지식과 가치를 그들의 뿌리에서 서로 연결하는 논리적인 결절점이다. 이러한 금지는 하나의 도덕적 규칙이며 규율이다. 참된 지식은 물론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참된 지식을 근거 지우기 위해서는 어떤 가치판단이, 혹은 차라리 어떤 가치의 공리가 필요하다. 객관성의 공리를 참된 지식을 위한 조건으로서 삼기로 하는 것, 이것은 하나의 윤리적 선택이지 지식의 판단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객관성의 공리에 따르면, 자의적으로 선택된 이 공리가 세워지기 이전에는 ‘참된’ 지식이란 아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이 따라야 할 규범이 무엇인지를 세우는 이 객관성의 공리는 어떤 가치 - 즉 객관적인 지식이라는 가치 -를 규정하고 있다. 객관성의 공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러므로 어떤 윤리를 위한, 즉 지식의 윤리를 위한 근본명제를 제시하는 것이 된다. (P 250)

 

지식의 윤리에 있어서는, 어떤 원초적인 가치에 대한 윤리적 선택이 지식을 근거 지우는 기반이 된다. 이 점에 의해서 지식의 윤리는 물활론적 윤리와 근본적으로 차이를 갖게 된다. 모든 물활론적 윤리는 내재적인 어떤 법칙들, 즉 종교적이거나 ‘자연적인’ 어떤 법칙들이 외부로부터 인간에게 부과된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법칙들에 대한 지식(인식) 위에 자신들의 윤리를 근거 지우려고 한다. 하지만 지식의 윤리는 이처럼 외부로부터 인간에게 부과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지식의 윤리는 인간 자신이 그것을 공리로 선택하여 모든 담론과 모든 행동의 진정성의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 즉 지식의 윤리는 인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부과한 것이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은 어떤 인식론적인 규범을 제시하는 책이다. 하지만 더불어 이 책은 무엇보다도, 도덕적 성찰로서 즉 정신의 자기 금욕적 훈련으로서 읽혀야 한다. (P 251)

 

진정한 담론은 그리하여 이제 과학(참된 지식)을 근거 짓게 되며, 인간의 손아귀에 거대한 힘을 쥐어주게 된다. 이 거대한 힘이 오늘날 인간을 풍요롭게도 위태롭게도 만들며, 인간을 해방시키기도 또한 예속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과학에 의해 조직되었으며 과학의 산물을 먹고 살면서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점점 더 많이 과학에 의존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가 물질적으로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것은 지식을 가능케 한 이러한 윤리 덕분이며, 정신적으로 허약한 것은 바로 이 지식에 의해 궤멸된 가치 체계에 여전히 의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은 치명적인 것이다. 우리의 발밑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어둠의 나락을 파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모순이다. 오늘날의 세계를 창조해낸 것은 바로 지식의 윤리다. 그러므로 이 지식의 윤리만이 오늘날의 세계와 공존할 수 있으며, 일단 제대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오직 이 지식의 윤리만이 오늘날의 세계를 계속 진화시킬 수 있는 참된 능력을 갖고 있다. (P 251)

 

어떤 가치체계도, 개인을 초월하는 -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이 자기희생을 기꺼이 무릅쓸 수 있을 정도로 개인을 추월하는 - 어떤 이상을 제시하지 못하고서는, 참된 윤리가 될 수 없다.

지식의 윤리는 그것이 가진 높은 야심에 의해서 아마도 이러한 극복에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의 윤리는 하나의 초월적 가치를 규정한다. 참된 지식이 그것이다. 그리고 지식의 윤리는 인간에게 이제 초월적 가치가 된 참된 지식을 단지 이용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위해, 의식적이고 확고한 자기 결정을 통해서, 봉사할 것을 제의한다. (P 253)

 

현존하는 자유주의 사회체제나 사회주의 체제는 ‘신적 권위’라든가 ‘인간이 자연적으로 타고난 권리’, 혹은 ‘역사의 과학적 법칙’과 같은, 객관적으로 확인될 수 없는 개념들에 의존하여 우리에게 호소한다. 즉 우리의 감정에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겁을 줌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이는 현존하는 이들 사회체제가 물질적인 면에서는 과학에 의존하면서도 정신적인 면에서는 과학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는, 내적 비정합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와 달리, ‘지식의 윤리에 입각해 세워지는 사회제제’라는 공감을 얻어내려고 함이 없이, 그것이 내적으로 논리적인 정합성을 가진다는 단 하나의 사실로서만 우리에게 호소한다. (P 257)

 

 - 자크 모노 (조현수 옮김). 철학. 우연과 필연. 궁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