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2

멱라의 길 1 / 이기철

이문형 2012. 2. 2. 01:50

                    멱라의 길 1  /  이기철

 

 

걸어가면 지상의 어디에 멱라*가 흐르고 있을 것인데

나는 갈 수 없네, 산 첩첩 물 중중

사람이 수자리 보고 짐승의 눈빛 번개쳐

갈 수 없네

구강 장강 물 굽이 치나 언덕 무너뜨리지 않고

낙타를 탄 상인들은 욕망만큼 수심도 깊어

이 물가에 사금파리 같은 꿈을 묻었다

어디서 이소(離騷)** 한 가닥 바람에 불려오면

내 지상에서 얻은 병 모두 쓸어 저 강물에 띄우겠네

 

발목이 시도록 걸어가는 나날은

차라리 삶의 보석을 갈무리한다고

상강으로 드는 물들이 뒤를 돌아다 보며 주절대지만

문득 신발에 묻은 흙을 보며 멱라의 길이 꿈 밖에 있음을 깨닫고

혼자 피었다 지는 꽃 한 송이에 눈 닿는 것도

이승의 인연이라 생각한다

 

일생이 아름다워서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일생이 노역과 상처 아문 자리로 얼룩져 있어도

상처를 길들이는 마음 고와서 아름다운 사람은 있다

때로 삶은 우리의 걸음을 비뚤어지게 하고

독 묻은 역설을 아름답게 하지만

멱라 흐르는 물빛이 죽음마저도 되돌려주지는 못한다

아무도 걸어온 제 발자국 헤아린 자 없어도

발자국 뒤에 남은 혈흔 쌓여

한 해가 되고 일생이 된다

 

 

 * 멱라 ; 중국 호남성에 있는 강, 초나라의 시인 굴원이 억울함을 못 이겨 빠져 죽 은 강

 * 이소 ; 시름을 만난다는 뜻. 굴원의 시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