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바람 그리기

자작나무에게로 / 이문형

이문형 2011. 12. 17. 01:26

  자작나무에게로  /  이문형 



삶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힘들 때마다

흰 생채기를 내는

가릴 것 하나 없는 외피는 

사람의 살결보다 진솔하다


서있음이 위안이고

제각기 다른 잎파랑이마다

평화였던 것을


지금은 기도하는 시간


기쁘거나 

슬플 때 같이하는

결코, 뿌리를 보이지 않는 나무


겨울, 자작나무 숲은

채우기 위해 비워간다

비우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고

존재는 바람 그 이상이라고

새벽빛을 띄우며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있다


아직은, 내 곁으로 불러낼 수 없기에

오늘도 나는 자작나무 숲으로 간다


늘 거기 서있음이 위안인 존재

 

   「바람 그리기」시편 : 책나무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