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그리기 / 이문형
책나무출판사
바람 그리기 / 이문형
투명하므로 보이지 않는 충만
느낌으로만 와 닿는 생을 그려내기란,
오늘도 바람은 날숨으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들을 움직이게 하고 들숨으로 스스로 울지 못하는 것들을 울게 한다. 웅웅, 바람은 세상을 씨줄 날줄로 엮고 풀며 씨앗을 씨앗이게 하고 냄새를 냄새이게 하고 주검을 주검이게 한다. 그리하여 하늘을 하늘이게 한다. 품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품고 끝없이 어제를 묻으며 돌아보지도 않는다. 자전과 공전의 힘으로 지상의 모든 숨결을 모아 미완의 세상을 그리고 있는 바람은 아직 한 획이 끝나지 않았다고 태양계를 따라 우주 끝으로 휘돌아 나간다. 오늘도 나는 영원한 술래가 되어 바람 잡기에 나선다.
그래 그래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바람이구나, 다함없는 행적, 그 영혼까지 바람이구나, 세상 안팎 속속들이 바람으로 가장 확실한 실존이구나, 오늘이 내일이구나.
애써 바람을 그려보면 내 자화상 하나 바람 한 자락에 묻혀 휘익 달려가고 있다.
존재론적 사유, 그 성찰의 시학
- 이문형의 시 세계
양 영 길(문학평론가)
I
성찰은 순수하게 경험 그 자체를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래서 훗설은 “자연적 태도에서부터 경험자체에로의 시야변경”을 성찰이라고 했다. 현상학적 성찰은 의식에 주어져 있는 것의 존재여부와 관련하여 어떠한 입장도 내세우지 않는 반면, 자연적 태도의 성찰은 주체가 익명으로 남아있는 일반 정립을 함께 이행하게 된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서 비로소 시인은 시야변경에 이르고 시적 세상을 새롭게 열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근거본질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면, 역설적인 어떤 것이 일어난다.”고 하듯이, 시인의 시적 세계 정립을 위해서는 시야변경에 의한 시적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의 존재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는 사유도 전체에서부터 제대로 자유롭게 풀려나지 못하게 되면 존재 사유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문형 시인은 존재론적 사유의 성찰을 마음껏 누리면서 나름의 세계를 정립해 나가고 있다. 『바람 그리기』 시편들은 시야변경의 시적 경험이 깊고 넓게 성찰되어 있었으며, 실존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평등의 원리, 속죄양 의식, 박명(薄明)이라는 판단중지 의식, 채움과 비움의 세상 원리 등 풍부한 시적 상상력을 통해서 또다른 경계에 이르고 있다.